- 무척 빨리 읽힌다. 이 책이 무척 훌륭하고 흥미진진하고 가독성이 있어 그렇다기 보다는 그냥 글이 저널리스트 스타일로 쓰였다. 물론 그런 스타일로도 얼마든지 훌륭한 글을 쓸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은 어쩐지 조야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 길게 논의되었어야 할 주제들이 너무 짧게 다뤄진다는 느낌이 든다.


- '사실'에 대한 기술 이외에는 별 것 없다. 나는 몇몇 부분을 제외하면 차라리 위키피디아를 읽는 게 낫다고 느낀다.


- 어떤 화두(e.g. 철학자의 직업윤리?)는 매력적이긴 하다. 그러나 결론은 이상하다.


- 아렌트가 하이데거를 '다시' 옹호하게 된 부분에 대한 서술은 상당히 비열하게 쓰여졌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물론 실제로 혐오스러운데가 있는 일이긴 하지만.


- '왜' 그들의 철학이 아직도 논의되는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 저자는 그들이 원래부터 기득권이었고 가해자였기 때문에 그렇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은데, 그런 측면이 없지는 않겠지만, 과연 그것이 전부인가?


- 어쨌든 크게 불쾌한 점도 없고 난해한 부분도 없다. 심심풀이로 읽기에는 매우 좋다.



추가 코멘트

*한국행 비행기에서 읽었다. 나는 그날 매우 운이 좋아 비즈니스석을 탈 수 있었다. 몸과 마음이 너무 편했던만큼 그때 조금 더 괜찮은 책을 읽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든다. (2016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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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쥘 미슐레의 <마녀>를 직간접적으로 인용하는 부분들

2. 1789년의 혁명에 대한 언급들




추가코멘트


이 메모가 블로그에 비공개로 올라와있다는 사실을 오늘(20160902) 깨달았다. 2야 뭐 당연한 부분이니 상관 없지만 1은 어떤 부분에서 그런 확신을 가졌는지 잘 기억이 안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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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가시나무의 기억

저자
이성복 지음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펴냄 | 2000-03-01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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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나무 흰 꽃들은 燈을 세우고 5>

 

물 고인 땅에 빗방울은 종기처럼 떨어진다 혼자 있음이 이리 쓰리도록 아파서 몇 번 머리를 흔들고 나서야 제정신이 든다 종아리부터 무릎까지 자꾸만 피부병이 번지고 한겨울인데 뜰 앞 고목나무에선 붉은 싹이 폐병환자의 침처럼 돋아난다 어떤 아가씨는 그것이 꽃이라고 하지만 나는 믿기지 않는다 그러나 혼자 견디려면 어떻든 믿어야 한다, 믿어야 한다

 

 

<높은 나무 흰 꽃들은 燈을 세우고 10>

 

센 강변의 배들, 물에 비친 배 그림자 순간마다 달라지고 웬 마로니에는 그렇게 많은 꽃燈을 세우는지, 그 꽃燈 뒤에 무엇이 무엇이 숨어 있는지 보고 싶지만 무서움은 다만 내게 있고 흐르는 노래는 옛날 노래 "상주 함창 공갈못에 연밥 따는 저 처자야... ..." 한참 걷다보면 꺼멓게 탄 여학생 시체 둘이 나란히 걸어온다 연극일 뿐이야, 다짐하지만 언제 나는 무대 밖에 있었던가 生死는 大事요 夢中生死라더니 역시 꿈은 서럽고 삶은 폭력적이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죽음>

 

나방이 한 마리 벽에 붙어 힘을 못 쓰네 방바닥으로 머리를 향하고 수직으로 부터 숨 떨어지기를 기다리네

담배 한 대 피우러 나갔다 온 사이 벽에 나방이가 없네 그 몸뚱이 데불고 멀리 가지는 못했을 텐데 벽에도 방바닥에도

나방이는 없네 아직 죽음은 수직으로 오지 않았네 잘 살펴보면 벽과 책꽂이 사이 어두운 구석에서 제 몸집만큼 작고

노란 가루가 묻은 죽음이 오기를 기다리네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죽음은 슬프지 않아라, 슬프지 않아라

 

 

 

<호랑가시나무의 기억>

 

1

먼지 낀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풍경 (짐 실은 트럭 두 대가 큰길가에 서 있고 그뒤로 갈아엎은 논밭과 무덤, 그 사이로 땅바닥에 늘어진 고무줄 같은 소나무들) 내가 짐승이었으므로, 내가 끈적이풀이었으므로 이 풍경은 한번 들러붙으면 도무지 떨어질 줄 모른다

2

국도에는 먼지를 뒤집어쓴 노란 개나리꽃, 배가 빵그란 거미처럼 끊임없이 엉덩이를 돌리며 지나가는 레미콘 행렬, 저놈들은 배고픈 적이 없겠지 국도변 식육식당에서 갈비탕을 시켜 먹고 논둑길 따라가면 꽃다지 노란 꽃들 성좌처럼 널브러져 있고, 도랑엔 처박혀 뒤집혀져 녹스는 자전거, 올 데까지 온 것이다

3

운흥사 오르는 길 옆, 산에는 진달래 물감을 들이부은 듯, 벚나무 가지엔 널브러진 징그러운 흰 꽃, 거기 퍼덕거리며 울음 울지 않는 것은 바람에 불려 올라간 검은 비닐 봉지, 안 될 줄 알면서도 한번 해보는 것이다 꽃핀 벚나무 가지 사이에 끼어 진짜 새처럼 퍼덕거려보는 것이다

4

아파트 옥상마다 신나게 돌아가는 양철 바람개비, 언젠가는 저리 신나게 살 수도 있었을까 청도 각북 용천사 가는 길, 산 능선을 타고 건장한 송전탑들 이어지고 비탈을 타고 내려오는 진달래 꽃불, 저를 한 마리 꽃소로 만드는 것도 산은 알지 못한다

5

흐린 봄날에 연둣빛 싹이 돋는다 애기 손 같은 죽음이 하나둘 싹을 내민다 아파트 입구에는 산나물과 찬거리를 벌려놓고 수건 쓴 할머니 엎드려 떨고 있다 호랑가시나무, 내 기억 속에 떠오르는 그런 나무 이름, 오랫동안 너는 어디 가 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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쉿 나의 세컨드는

저자
김경미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06-03-31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198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 비망록이 당선되며 등단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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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갱- <일본 판화가 있는 정물>

 

날 좀더 과묵하게 묘사해다오 슬픔이여

무모함이
파멸이 서리지 않은 가슴
그 어떤 진실로
감당하랴

강렬하되 고요한 불길을 나 깨우쳤던가

형광빛 옷자락,
신발 물 붓는 나비들 가득한 일생에

검정 윤곽 너무 많이 그려넣고
탁자 위 이마 잘린 머리통에 연필꽃을 꽂고

일부러 폐 끼칠 마음은 아니었으니 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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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단어

저자
유희경 지음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2011-06-06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짐짓, 말하지 못했던 우리의 감정에 대해 “참을 수 없는 감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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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었다던 작약>


네가 심었다던 작약이 밤을 타고 굼실거리며 피어나, 그게 언제 피는 꽃인지도 모르면서 이제 여름이라 생각하고, 네게 마당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면서 그게 아니면, 화분에다 심었는지 그 화분이 어떻게 허연빛을 떨어뜨리는지 아는 것도 없으면서 네가 심은 작약이 어둠을 끌고 와 발아래서 머리 쪽으로 다시 코로 숨으로 번지며 입에서 피어나고, 둥근 것들은 왜 그리 환한지 그게 아니면 지금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 가르쳐주지도 않으면서, 봄은 이렇게 지나고 다시 여름이구나 몸을 벽에 붙여보는 것이다 그러니 작약이라니 나는 그게 어떻게 생긴 꽃인지도 모르고 나도 아니고 너는 더구나 아닌 그 식물의 이름이 둥그렇게 떠올라 나는 네가 심었다는 그것이 몹시 궁금하고 또 그런 작약이 마냥 지겨운 건 무슨 까닭인지 심고 두 손을 소리 내어 털었을 네가, 그 꽃이, 심었다던 작약이 징그럽게 피어

 

 

<나는 당신보다 아름답다>


여자는 두 팔로 남자의 허리를 감고
남자의 가슴에 울음을 바르고 있다
등이 점점 둥글게 말린다 그대로
서로의 몸속으로 들어설 것처럼
얼굴을 핥아가며 기록하는
슬픔의 지형과 습도와 기온

잃어버린 축축한 열쇠를 들고,
오랫동안 잠겨 있던 문을 열며
들어가다 멈춰 선 자세로
서서히 사라지는 어떤 계절을
생각한다 그때 나는 아껴가며 울었다
신발 끈 묶듯 모든 이별을 경험했으니
방목하던 인류애를 모두 불러
일부는 팔아먹고 병든 것들은
풀어주었다 그 계절을 이렇게 적는다
개인의 역사란 뒷골목에 묻은
울음소리 같은 것 내 주변에는 늘
비가 내렸고 장엄한 풍경이 되기 위하여
나는 무엇이든 되기를 바랐다
비가 오는 밤에는 꼭 누군가
등 뒤에 서 있는 기분 사람은
누구나 등을 키우고
나는 나를 받아내느라 내 손을 다 썼다

지금, 남자가 울어버린다 등만 남긴
서투른 연애를 경청하며 조금씩
녹아내리는 사람이 있다 곁으로
구름이 모이고 달무리 진다


 

 

<우산의 과정>

 

우산에 대해서라면 오래오래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검은빛이고 나는 펼쳐진 시간을 사랑한다.
예를 들어 점점 어두워져가는 거리, 어깨를 감춘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갈 때, 가로등 켜지고, 그림자 사라지고, 나는 머뭇거릴 때,
검은 물로 태어나는 것 혹은 젖은 몸으로 살아가는 것 쉽게, 자신을 잃어버리거나 잊어버리는 방법 혹은 혼자서 걸어가는 일
그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은 나뿐, 비가 온다는 얘기는 없었지만, 나는 긴 우산을 들고 있었고 하늘은 우울한 색으로 빛났다. 인부들은 동시에 신음을 쏟았다. 휘청이는 구덩이. 그러나 죽은 사람은 영영 돌아오지 않는다. 그날의 색은 기억나지 않는다.
또 한 번 불붙은 것은 우산이었다 토요일이었고 나는 침착하게 걸었다 빠른 속도로 차들이 미쳐가고 웅덩이마다 가득한 멍이 넘처나 토할 수밖에는
그러니 어떻게 우산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는가 길거나 짧고 접거나 펼쳐진 채, 기억과 함께 동시에 불어나는 존재를
어떤 신문은 구멍 난 얼굴의 명단을 속보로 내보내었다 모두들 경악했으나 떨어지는 방울 하나 없이도 아무 일 없었던 그날
아침, 내가 밟았던 웅덩이는 길고 좁았다. 나는 그런 눈을 가진 이를 한 명 알고 있다. 우연히 알게 된, 나를 붙들고 한참을 울었던 사람 왜 울었는지 기억나지 않는, 나는 아직도 그녀가 왜 그렇게 울었는지 알지 못한다. 여자의 머리 위에서 조금씩 조금씩 흘러 내리던 검고 가느다란 실핀 그러나 아무도 우산을 펴지 않는다.
그렇다면 보자 모든 방향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태어나는 것은 죽어가는 일일까 왜, 흐르지 않고는 미칠 수밖에 없는가
나는 매혹이 들어 올린 가벼운 천장을 보고 있다 잡아당겨 팽팽해진 이름 아래서 다행과 만족이 찾아오는 것인데,
누구나 자신의 이름을 쓰며 당황하거나 방황하는 법이다 이름은 병을 앓은 적 없다 나는 그것의 뒤를 사랑하고 싶다 사랑의 길고 가는 뼈 그러니,
촛불같이, 젖은 신부가 지나가던 때도 있었다. 우산 아래서 그는 나를 지켜보았다. 가벼운 풍경이어도 좋았다. 동전처럼 가볍고 반짝이는 것이라도 되는 것처럼 구걸한 그러나 목숨은 넣어둔 약 봉지였을지도 모른다. 현실은 넣어둘 곳이 필요한 것이므로.
이것은 나의 오랜 철학이다 그것에 대해 나는 오래오래 이야기해왔고, 또 오래오래 이야기할 것이지만, 우산에 이름을 붙이는 미친 남자에 대해서라면
나는 그것을 고백하지 않는다 나는 그것을 예뻐하지 않는다 그것이 없더라도 나는 그것을 그리고 그것과 살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산을 함께 쓰고 가는 행위에 대해 우리는 깊이 생각해봐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것이 쓰디쓴 추억일지라도.

 


 


<내일, 내일>

둘이서 마주 앉아, 잘못 배달된 도시락처럼 말없이,
서로의 눈썹을 향하여 손가락을, 이마를, 흐트러져 뚜
렷해지지 않는 그림자를, 나란히 놓아둔 채 흐르는
 
  우리는 빗방울만큼 떨어져 있다. 오른뺨에 왼손을
대고 싶어져 마음은 무럭무럭 자라난다 둘이 앉아 있
는 사정이 창문에 어려 있다 떠올라 가라앉지 않는,
生前의 감정 이런 일은 헐거운 장갑 같아서 나는 사
랑하고 당신은 말이 없다.
 
  더 갈 수 없는 오늘을 편하게 생각해본 적 없다 손
끝으로 당신을 둘러싼 것들만 더듬는다 말을 하기 직
전의 입술은 다룰 줄 모르는 악기 같은 것 마주 앉은
당신에게 풀려나간, 돌아오지 않는 고요를 쥐여 주고
싶어서
 
  불가능한 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당신이 뒤
를 돌아볼 때까지 그 뒤를 뒤에서 볼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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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03 이병률, <찬란>

Poems 2014. 12. 20. 01:35

 


찬란

저자
이병률 지음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2010-02-11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바닥없는 슬픔을 응시하는 깊고 담박한 시선 서서히 차올라 기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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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집>

 

기억을 끌어다 놓았으니 산이 되겠지

바위산이 되겠지

여름과 가을 사이

그 산을 파내어 동굴을 만들고 기둥을 받쳐 깊숙한 움을 만들어

기억에게 중얼중얼 말을 걸다 보면 걸다 보면

 

시월과 십일월 사이

누구나 여기 들어와 살면 누구나 귀신인 것처럼 아늑하겠지

철새들은 동굴 입구를 지키고

집이 하나로는 영 좁고 모자란 나는

해가 밝으면 동굴을 파고 파고

그러면 기억은 자꾸자꾸 몰려와 따뜻해지겠지

 

그 집은 실뭉치 같기도 하고 모자 같기도 하며

어쩌면 심장 속 같기도 하여서

겁먹은 채로 손을 푹 하고 찔러넣으면

보드랍고 따스한 온기가 잡혀와 아찔해진 마음은

곧 남이 되겠다고 남이 되겠다고 돌처럼 굳기도 하겠지

 

그 집은 오래된 약속 같아

들여다보고 살고도 싶은 여전히 저 건너일 것이므로

비와 태양 사이

저녁과 초저녁 사이

빛이 들어 마을이 되겠지

 

그렇게 감옥에 갇혔으면 하고 생각한다

감옥에 갇혀 사전을 끌어안고 살거나

감옥에 갇혀 쓸데없는 이야기나 줄줄이 적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 기억하는 일 말고도

무슨 죄를 더 지을 것인가를 생각한다

성냥을 긋거나

부정을 저지르거나

거짓말이라도 해야 하는 건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세상을 끊는 일에 대해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또 태어나야 할 거라고 생각한다

 

 

 

<자상한 시간>

 

의자가 앉으려 하고 있다

 

사람은 사람을 서로 아프게 하여

스스로 낫기도 하겠다는데

나는 한사코 혼자 앓겠다는 사람 옆에 있다

 

의자는 의자에 앉으려 애쓰고 있지만

꽃과 이 사람은

무엇을 애써 누르려 한 적도

살겠다고 애쓰는 것도 본 적이 없다

 

어둠이 소금처럼 짠 밤에

병이란 것과

병이 아닌 것을 아는 시간이 뜨겁게 피었다

의자를 의자에 앉힐 수 없어

풀과 나무들과

공기들의 땀 냄새를

마시고 녹이는 사이

 

그 바깥은

죽을 것처럼 맞춰진 시간들이

다시 죽을 것처럼 어긋나고 있었다

 

까치야

소용없단다

이 밤에 아무리 울어도

기쁜 일은 네 소관이 아니란다

 

 

<기억의 우주>

 

고개를 든 것뿐인데

보면 안 되는 거울을 본 것일까

 

고통스레 관계를 맺은 기억들,

기억의 매혹들이

마지막인 것처럼 몰려오고 있다

이제 쓰거운 것이 돼버린 파문들을

단숨에 먹어치우고 끝내버리자는 것일까

 

하나의 지구를 녹이고

또 하나의 지구를 바꾸게 되었다

기억하고 있다면 기억하지 말라는 듯

우주는 새들을 풀어놓았다

무엇으로 다시 천지를 물들일 것인가를

곰곰이 생각한 듯

 

소멸하지 않는 기억의 우주를

쌓이고 샇이는 외부의 내부를

어쩌자고 여기까지 몰고 와서는

안정하지 못하는 것일까

 

해를 보면 어두워지는

달을 보면 환해지는 기억들은

왜 적막하게 떠돌지 못하고

우주에 스미는 것일까

 

 

 

<입김>

 

가볍게 입김으로 용서해다오

발정 난 종아리에

가볍게 입김을 부어다오

 

잘못과 방랑과

아무것에나 아무한테나 아니다라고 말 뱉은

내 사막을 끝나게 해다오

 

저녁이 오고 새들이 세상을 지우려 해도

거짓한 내 능청과 황폐를

매 맞게 해다오

 

입김으로 감자를 싹 나게 해다오

입김으로 살찌게 해다오

 

나 죽어서도 한 오십 년 입김을 뱉게 해다오

 

그리해다오

 

내장이 외워대는 잡설들을

감히 손 뻗었던 낙원들을

모두 문 닫게 해다오

 

소슬히 빈집의 장판을 들추는 일

그 빈집 습기로 허물어지는데도

광휘를 보겠다고 지켜 서 있는 나를 배웅해다오

 

넘어서다오

 

가볍게 입김으로

가볍게 입김으로

나를 파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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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리바리

저자
윤선자 지음
출판사
열린책들 | 2014-06-10 출간
카테고리
역사/문화
책소개
이웃들이 괴성을 지르며 몰려와 문을 부수고 오물을 던진다샤리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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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7월 14일에 온라인 교보문고에서 서울집으로 주문하였다. 나의 육신은 물론 다른 나라에 있으므로 당장 읽을 생각은 아니었고 다른 책들과 마찬가지로 한국의 내 방에 쌓아놓고 겨울방학에 읽을 생각이었다. 허나 아버지께서 소포를 보낼 때 책을 몇 권 정도는 보내주실 수 있다기에 이 책과 페르낭 브로델의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읽기>를 우선 부탁하였다. 후자는 그 책의 성격상 너무 컴팩트했기에 상대적으로 이쪽이 굉장히 컨텐츠가 풍부한 느낌이었고, 더불어 흥미진진했다. 초반부는 전에 어쩌다 줏어 읽은 저자의 동일 주제를 다룬 논문과 내용이 다소 겹쳐 심드렁했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모르는 이야기가 계속 튀어나와서 동기부여가 되었다.

사실 내가 지금 읽고 있는 책은 Frederic Maitland의 'A Sketch of Legal History'인데 굳이 이 책을 먼저 포스팅해야되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다: 1) 일단 가장 최근에 완독한 책이며 2) 최근에 읽고있는 여러가지 책들과 여러모로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다 3) 그리고 그렇게 생겨난 최근 독서의 그물에서 그나마 중간적인 위치를 가지고 있지 않나 싶다. 3)에 관해 비유적으로 얘기하자면, 한 권의 책이 마치 블로그 포스팅처럼 태그를 갖고있다고 생각 했을 때 (e.g. 곰, 샤를마뉴 대제, 미시사, 이미지, 민속학, 민중, 농촌, 숲), 내 최근의 독서에서 이 책이 다른 책들과 겹치는 태그가 제일 많다는 것이다.

3)에 관해 가장 길게 설명한 것은 한 마디로 그것이야말로 이 포스팅을 쓰게 하는데 있어 가장 결정적인 동기라는 말이다. 허나 나는 지금 책장정리를 한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지금 이 포스트를 쓰며 너무 괴로운 딜레마에 빠져있다. 왜냐면 하드커버에 꽤 두꺼운 그 책을 책장 깊숙한 곳에 꽂아넣었고, 다시 꺼내기가 너무 싫기 때문이다. 얼마전까지 책 지옥이었던 방을 큰 맘 먹고 정리했는데 그 시스템을 허물기가 싫어.. 귀찮고 두려워.. 지금 내가 살고있는 자취방에 책장이라곤 두 칸짜리 작은 책장 뿐인데 이 책장에 지난 4학기 동안(나는 중간에 한 번 휴학을 했다)의 대학 교재와 오고가며 산 책들과 도서관에서 빌려온 15 권의 책들이 절묘하게 배치되어있다. 

그러므로 이 책에 대한 이야기는 비슷한 태그를 가진 다른 책들에 관한 포스팅에서 하고, 다음에 엄마 집에 갈때 책을 좀 갖다놔야겠다는 의미 없는 다짐을 하며 글을 마친다. 이 책에 관한 유의미한 이야기가 있을까 낚여서 들어온 많은 사람들에게 심심한 사과를 전하며..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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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디디디스이즈

Agenda 2014. 10. 5. 00:15

이 블로그는 나의 뤼딩 다요리이다.

 

기존의 블로그는 여러가지 잡다한 용도로 쓰던 것이라 새로운 무언가를 시작하는 데 있어 알맞지 않다고 판단, 이 블로그를 새로 만들었다. 일단 만들었지만 얼마나 어떻게 잘 쓸지는 모른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남들이 읽을만한 리뷰를 쓰는 곳이 아니라 나를 위한 다이어리를 쓰는 곳이다. 현재 내가 구상하는 이곳의 이미지는 단어장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단어 대신 책들을 그자리에 집어넣고, 옆에 나에게 필요한 설명들을 쭈욱 쓰고, 그렇게 모으고 모아서 일종의 다타베이스를 만드는 것이 나의 목적이다.

 

그렇다구 그냥~~~~ 알아두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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