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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01.04 20191231 루스 배러클러프 <여공문학> 3

자신의 계급 정체성 너머를 상상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가난하게 컸던 우리 엄마는 자식들에게 자신의 유년시절을 회상하며 공순이가 되고 싶었다거나 학교를 안 다니고 돈을 벌러 다니고 싶었다는 얘기를 종종 하곤 했다. 한 중학생 때까지만 해도 나는 엄마가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의 나로서야 그 시절 엄마의 고민이 각박한 경제상황에서 당연히 할 수 있는 생각으로 받아들여지지만 어릴때는 그런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뭐랄까, 생리적인 거부감이 들었다. 평생 중간계급의 생을 영위해온 나로서는 노동계급의 일원이 되고 싶다는 생각 자체가 수치스럽고 한심한 이야기처럼 들렸던 것이다. 게다가 내가 아는 엄마의 모습은 중간계급에 진입하는데 성공하고 대학원에까지 진학한 교양인의 그것이었기 때문에, 그런 생애경로를 밟은 사람이 저런 ‘멍청한’ 생각을 했다는 것을 쉽게 납득할 수가 없었다. 어린 나는 당장 쥐꼬리만한 돈을 벌기 위해 훗날 더 큰 경제적 이익을 가져올 게 자명한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공순이(!)'가 되겠다는 명예롭지 못하고 근시안적인 생각을 우리 엄마가 했다는 것을 이해하는데 큰 어려움을 겪었다. 보다시피 어린 시절의 나는 빈곤에 대한 그 어떤 이해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여공이 되고 싶었다’는 엄마의 말에 과거의 내가 가진 적의와 거부감이 오히려 당혹스럽지만, 사실 그것이야말로 중간계급의 아이가 가진 전형적인 노동/가난혐오의 표출이었을 것이다.

‘여공’과 ‘문학’을 합친 여공문학이라는 조어가 강렬한 대비를 품고 있는 것 처럼 느껴진다면 그것은 필연적으로 두 단어가 어떤 계급과 결부되어 있는지가 너무 자명하기 때문이다. 문학 내부에서도 물론 다양한 시도가 존재해왔지만, 그것의 생산자와 향유층이 대체로 어느정도의 경제적 여유와 교육수준이 있는 계층에 속해있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문학의 전통에서 노동계급에 속하는 인물상인 여공은 꽤나 인기 있는 주인공이었다. 굳이 순문학적 전통에서 탈피하려고 시도한 장르들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박완서 같은 기성작가 역시 여공을 주인공으로 한 단편을 여럿 발표했으며, 90년대의 후일담 문학은 말할 것도 없다. 문학적 아이템으로써 여공이 가진 인기는 고속성장 시기 한국의 사회경제적 현실에서는 어느정도 필연적일 수 밖에 없는데, 이는 그들이 수적으로 많았을 뿐만 아니라 한국의 산업화에 대한 그들의 기여가 '아무리 높이 평가해도 지나치지 않을'만큼 컸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학이 필연적으로 중간계급적 정체성과 강하게 결부된 매체라면, 그것은 애초에 노동계급, 더 나아가 여공이라는 주체를 상상하고 재현하기에 적합한 매체인가? 여공문학은 과연 여공들이 누구였는지 재현하는데 성공했는가? 물론 나는 엄마의 10대를 이해하기 어려웠던 상상력이 부족했던 나의 어린 시절에 대해 너무 깊이 생각하는 것일수도 있다. 어쩌면 예술적 상상력이 충만한 사람들에게 타인의 삶을 관찰하고 재현해내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어쨌든 <여공문학>에 나타난 분석을 보면 적지 않은 수의 작품들이 이러한 장르적 한계에 봉착해 있었으며, 이러한 태생적 모순이 극복되는 과정이야말로 여공문학이라는 장르의 발전과 역사를 관통하는 테마인 동시에 한국사회 전반을 이해하는 데 있어 강력한 시사점이 되고 있다.

저자는 여공문학의 전성기를 크게 식민지 시기인 1920-30년대와 해방 후 산업화 시기인 1970-1990년대로 구분한다. 저자의 분석에 따르면 이 두 시기의 여공문학 사이의 연속성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고 봐도 좋을 듯 하다. 식민지 시기의 여공문학은 주로 카프에 속했거나 Sympathizer 정도의 포지션을 가지고 있었던 좌익계통의 작가들에 의해 주로 생산 되었는데, 사실 생각해보면 남한에서 카프니 월북작가니 하는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된 것 자체가 얼마 되지 않았으므로 이러한 단절에는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

식민지 시기 여공문학의 특징은 (저자에 의하면 강경애의 <인간문제>정도를 제외하고는) 근대적 산업화와 일제의 식민지 정책에 의한 철저한 희생양, 그리고 노동계급 남성에 의한 계몽과 구조를 기다리는 존재로 묘사되는데 그친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선은 단순히 여성 노동계급의 주체성 혹은 정치적 가능성을 외면한다는 것 이상으로 문제적인데, 이들이 재현한 여공의 서사는 여공들이 실제로 처한 폭력적 상황에 대한 몰이해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몰이해는 특히 공장에서 자행되던 성폭력에 대한 묘사에서 철저하게 드러난다. 그들이 묘사하는 성폭력은 그저 신체적 약자에 대한 강제적 섹스로 그려지며 이것은 여성이 가지고 있는 여러 취약성을 강조하여 독자의 정념을 끌어내는 장치로 이용되는 데 그친다. 이 좌익 성향의 작가들이 실제로 가진 선의와는 별개로 2-30년대의 여공문학은 작업장 내 성적 위계의 역학과 여공들이 실제로 어떤 사람들이었는지에 대해서는 평면적인 이해만을 보이는데 그친다. 저자는 이 시기의 여공문학에서 유일하게 강경애를 이러한 한계에서 벗어난 작가로 꼽는데, 그 이유는 강경애가 가부장적 사회에서 성폭력이 가지고 있는 도구적이고 공모적인 성격을 정확하게 짚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자면, 주인공 선비가 지주에게 겁탈을 당한 뒤 ‘아들을 낳아 그 집에서 가장 힘 있는 여자가 되는 것과 그 집을 도망치고 싶다고 생각하는 (p 126)’ 장면이 그렇고 한 여공이 간난이 몰래 감독의 숙직실로 걸어들어가는 장면이 그렇다. 저자의 말처럼 “다양한 일들로 말미암아, 남성과 여성의 성적인 관계는 지속적으로 애매해지고, 증명 불가능하며, 공모적인 것이 되며, 언제든 쉽게 발생하게 된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강경애 정도를 제외하면 1920-30년대의 여공문학의 성취를 높게 평가하지 않는 듯 하다. 이는 어느정도는 당대의 경제적, 문화적 요소와 연관이 있는데, 이를테면 ‘하층계급 여성들의 높은 문맹률과 그들을 녹초로 만드는 공장 노동이 독서 자체를 불가능한 취미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p 143)’. 그 시절의 여공들은 문학 내부에서 자신들이 어떻게 재현되는지 알 길조차 없었으며 자신들이 어떻게 재현되어야 할지에 대해 목소리를 가지지 못했다. 이러한 온정적이고 평면적인 이해는 여공들 스스로가 여러가지 조건(문해력, 최소한의 경제력 등)을 갖추고 작가되기를 시도할 때에서야 어느정도 극복된다.

그렇다면 7-80년대의 여공문학은 단순히 서술주체가 바뀌었다는 것 이외에 어떤 질적 성취를 이뤄냈는지에 대한 질문이 가능하다. 저자는 그 답을 논하기 전에 고속성장 시절 독재정부가 전통적 유교 가부장주의 내부의 젠더 위계질서를 어떤 식으로 산업화 시대에 적용했으며 여러 진영에서 어떤 이미지가 여공들에게 강요되고 있었는지를 짚고 넘어감과 동시에 여공들이 시대의 불평등과 폭력에 어떻게 저항해왔는지를 이야기한다. 이러한 논의에서 여성이며 동시에 노동계급이라는 정체성에서 기인한 복잡한 억압기제, 몇가지 예를 들자면 빈곤이라는 어려움과 동시에 전통적으로 여성이 바깥일을 하는 것을 금기시하는 사회에서의 노동하는 여성이 가지는 낙인, 동일방직 사태에서 드러나듯 적극적으로 여성 노동계급을 탄압하는데 가담하기까지 하는 남성 노동계급과의 경쟁 등 다면적이고 뿌리 깊은 모순들이 드러난다. 그런 의미에서, 2-30년대의 여공문학과 여공들이 스스로 작가되기를 실현했던 7-80년대 여공문학의 사이에는 바로 여성 노동계급이 처한 상황의 복잡다단성을 재현하는데 성공하고 여공 개인의 목소리를 독자에게 전하는데 성공했다는 질적인 차이가 존재한다. 저자는 이러한 텍스트로 장남수의 <빼앗긴 일터>, 석정남의 <공장의 불빛>, 그리고 여공문학이 이룬 성취의 어떤 정점으로 신경숙의 <외딴 방>을 거론하는데, 개별의 텍스트에 대한 자세한 비평을 여기 적지는 않겠다.

이 책이 다루는 주제는 어디까지나 식민지 조선과 산업화 시기 한국 내부의 여공문학에 한정되어 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영미권의 산업소설 내지는 프롤레타리아 문학과 그에 대한 비평을 이용하기는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여공문학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도구로 쓰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결국 책 전반에 걸쳐 더욱더 광범위하고 보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한국의 여공문학은 이 질문에 대한 부분적인 답변으로 여겨질 수 있을 것이다:

"중간계급 여성이 문학작품을 쓰기 시작했던 바로 그 역사적 순간에 근대 세계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는 버지니아 울프의 유명한 경구가 옳다면, 여성 노동계급의 글쓰기가 근대성, 자본주의 그리고 우리 자신에 관해 이야기해 주는 것은 무엇일까?" (p 17)

이상으로 2019년에 마지막으로 읽은 책에 대한 독후감을 마친다.

Posted by 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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