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려 2019년 최초로 완독한 책이다. 아마 이 책을 샀을때는 제목만 보고 별 생각 없이 샀던 거 같다. 책을 받았을 때, 그리고 또 이 책을 멜번으로 부칠 때 모두 '내가 왜 이런 책을 샀지' 하고 당혹했던 기억이 난다. 내가 읽고싶은 종류의 책이 아니었다. 물론 그것과 별개로 나는 내가 이 책을 제목만 보고 산 이유를 쉬이 짐작하고 있다. 나 스스로가 어느정도 바이링구얼의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굳이 '어느정도'라는 단서를 다는 이유는 내가 만 12세의 나이에 유학길에 올랐을땐 벌써 이미 한국어가 너무나 견고하게 내 모어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인생의 절반을 넘는 세월을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살았으면서도 한국어를 구사할 때 체감하는 자유도를 영어에서 느낀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종종 영어로 꿈을 꾸며, 한국어로 논설문을 쓸 생각은 감히 하지 못한다. 논술교육을 한국어로 받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쓰기에 대한 욕망이 있고 그것은 언어를 가리지 않는다. 그런 나에게 <이중언어 작가>라는 제목이 눈길을 끌지 않을 수가. 


그리하여, 나는 이 책이 <이중언어 작가ㅡ근현대문학의 트랜스내셔널한 기원을 찾아서>라는 학술회의 원고들을 토대로 만들어진 책인줄은 꿈에도 모른 채 이 책을 산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이 책의 주제는 내가 막연히 상상한 것과는 아주 멀었다. 2017년에 읽었던 서경식의 <언어의 감옥에서>는 제목만 보고 골랐는데도 운이 좋게 내가 읽고싶었던 내용(바이링구얼 화자의 고유한 인식과 경험)을 읽을 수 있었는데, 이번에는 처참히 실패했다 하겠다... 그렇다고 책 내용이 아주 재미가 없는 건 아니었지만 학문으로써의 문학에 대해 아는 바가 일천한 나로서는 이해에 다소 한계가 있었다.


이 책의 공저자들은 모두 문학 전공자들이다. 각각의 원고에서 저자들은 자신의 전공분야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몇몇 이중언어 작가들을 다루고 있다:


1장 이광수 (한국어/일본어)

2장 횔덜린 (독일어/그리스어)

3장 레싱(독일어)과 세노작 (터키어/독일어)

4장 새뮤얼 베케트 (영어/프랑스어)

5장 앗시아 제바르 (아랍어/프랑스어/베르베르어)

6장 아룬다티 로이 (말라얄람어/힌디어/영어)


흥미롭게도 2장과 4장은 (연구자가 영어 화자이기 때문에 어느정도 필연적으로) 영어로 쓰여있다. 책의 컨셉에 맞춰 의도한 바도 어느정도 있겠지 싶다. 대체로 절반 정도는 재밌게 읽었지만 그다지 모더니스트가 아니라 베케트 원고는 도저히 재밌게 읽을 수 없었다. 앗시아 제바르라는 내가 몰랐던 저자를 소개 받은 것은 꽤 기분 좋은 일이었다. 중근동 문화에 관심이 있어서 타리크 알리의 소설들을 Verso 출판사가 세일할 때 무더기로 사다놨었는데, 그다지 속도가 붙지 않아서 때려쳤던 적이 있다. 픽션에 있어서는 여성작가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는 나로서는 이 작가는 좀 다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기회가 있다면 제바르의 책을 한 권 사보기로 결정.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이번 독서의 가장 큰 교훈은 제목만 보고 책을 사면 안된다는 것, 그거 같다.

Posted by 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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