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서문은 '평전'이라는 단어의 정의를 논하며 시작한다. 저자의 요지는 간단하다. 이 책은 한 사람의 생애를 다루고 있지 않으므로 단어의 정의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뿐이 아니다. 책을 읽으면서 다른 각도에서도 과연 '평전'이라는 제목이 적합한가 의문부호가 그려졌다. 어떤 '평'을 담고있기에는 책의 분량이 다소 짧았다. 책의 서술은 조선공산당을 둘러싼 인물과 사건을 따라가는데 집중한다. 물론 한 명도 아닌 다수의 개인을 포함하는 집단을 다룬 평론을 하려면 그것은 엄청난 연구서가 되어야 할 것이므로 나의 이런 지적은 다소 지나치다고 할 수도 있다. 막상 책을 덮고나서 생각해보면, 이 책에 <조선공산당 평전> 이상의 다른 더 적절한 제목도 달리 생각나지 않는다. 


도움이 많이 되는 책이었다. 비교적 어릴 때 빨간 물이 들었지만 청소년기-청년기의 대부분을 해외에서 보낸 나로서는 한국의 사상사와 운동사에 접근할 기회가 많지 않았고, 있다고 해도 아주 초보적인 지식만 획득할 수 있었다. 거의 술자리나 인터넷을 통해 얻은 지식이 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때문에 '빨갱이'로 정체화한지 10년이 지난 이제는 막연한 빨갱이 정서와 친근감을 갖고 있을 뿐, 어디 가서 왼쪽에 있다고 하기도 민망한 사람이 되었다. 그렇게 애매하고 파편화된 지식을 갖고 살아오던 찰나, 이렇게 누군가 정연하게 시간순으로 엮은 텍스트를 보니 많은 것이 새로 보이고 이해가 되었다. 책을 읽고나니 지금까지 이런 기초적인 배경도 모르고 개화기 사회주의자들을 다룬 책들을 뒤적거렸으니 그동안 배운 게 없지, 실소가 나왔다. 이 다음 책으로는 전에 반쯤 읽고 때려치운 <현앨리스와 그의 시대>를 다시 읽기로 결정했다. 이번에는 아는 게 좀 있으니 재밌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책을 읽으며 머리 속에서 많은 정보가 다시 환기됐다. 나는 한 6, 7년 전에 임경석의 <잊을 수 없는 혁명가들에 대한 기록>을 인상 깊게 읽은 적이 있다. 아마 김단야니 주세죽이니 하는 명성 자자한 공산주의자들의 이름들도 여기서 처음 봤을 것이다. <조선공산당 평전>을 덮자마자 서재의 책장에서 <잊을 수 없는 혁명가들에 대한 기록>을 꺼내서 훑었다. 그때는 그냥 '과거의 전설적인 사회주의자들이 이런 일을 했군..'하며 무협지 보듯 했던 내용들이 다시 이해가 되었다. 이 책을 읽을 당시 나는 김철수의 회고를 굉장히 재밌게 읽고 그의 행보를 방해하는 파벌들에게 적대적인 관점에서 정보를 받아들였던 기억이 희미하게 나는데, 우습게도 <조선공산당 평전>을 읽을때는 김철수의 반대파였던 화요파에 감정이입을 하며 책을 읽었다. 뭘 잘 모르니까 그때그때 이입을 대상을 찾아가며 페이지를 넘겼던 것이다. 이렇게 몇년전에 읽은 책까지 재독을 한 차례 하고나니 협소한 관점이 다소 극복되는 기분이 들었다. 책을 읽는 순간 바로 이렇게 발전한 느낌이 들면 짜릿하다. 


한국의 사회주의자들과 그 역사에 관심이 있되 나처럼 그다지 조예가 없는 독자들에게 강력하게 추천한다. 저자의 비결이 무엇인지는 모르겠는데, 수많은 파벌과 인물이 다소 짧은 시간 안에 복잡하게 얼키고설키는 역사를 부담스럽지 않게 풀어내므로 그다지 읽기 어렵지 않다. 이 책을 시작으로 해서 이 주제에 관해 조금 더 본격적인 저술들을 읽는다면 얻는 게 많을 것이다. 

Posted by 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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