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독서 방침과 이 블로그의 용도에 대해 2014년 무렵 간략하게 쓴 적 있지만; 1) 그 설명이 적절하게 쓰였다고 생각하지 않고, 2) 요즘 조금 더 적극적으로 블로깅을 하고 있으므로 다시 한 번 정리를 할 필요성을 느낀다. 

당시 나는 이렇게 썼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남들이 읽을만한 리뷰를 쓰는 곳이 아니라 나를 위한 다이어리를 쓰는 곳이다. 현재 내가 구상하는 이곳의 이미지는 단어장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단어 대신 책들을 그자리에 집어넣고, 옆에 나에게 필요한 설명들을 쭈욱 쓰고, 그렇게 모으고 모아서 일종의 다타베이스를 만드는 것이 나의 목적이다."


'다타베이스'라는 큰 이미지는 아직도 유효하다. 다만 이제 와서는 어째서 이런 컨셉을 잡았는가 조금 설명을 할 필요성을 느낀다. 나는 대단한 다독가는 아니지만 어느 나라에 떨어지던간에 성인 평균보다는 조금 더 읽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어느 순간 독서라는 행위와 책에 대한 나의 물신적 집착에 대해 상당한 회의를 하게 되었다. 책을 읽는 순간에는 저자가 제공하는 문제의식과 사고를 따라가면서 어느정도 충만한 경험을 하는데, 책을 덮고나서는 뭘 봤고 뭘 했는지 잘 기억이 안나는 것이다... 그때 무언가 책, 나아가 지식 전반을 대하는 나의 접근에 문제가 있다고 느꼈다. 


책을 읽고나서 내용이 기억이 안나는 게 문제라면 가장 무난한 해결책은 역시 독후감을 쓰는 것이다. 독후감을 쓰는 행위는 단순히 내 감상을 받아적는 것에서 더 나아가 필연적으로 나의 인상들을 되새김질 하고 언어화하는 과정을 필요로 하므로 마치 공부를 하며 노트를 쓰고 정리하는 것과 유사한 효과를 낸다. 그래서 나는 일단 책을 읽고나면 독후감을 쓴다고 방침을 정했다.


동시에 나는 어릴적 제일 좋아하는 책이었던 <신화의 힘>의 어느 부분을 떠올렸다. 이 책은 비교신화학자 조셉 캠벨과 언론인 빌 모이어스의 대담집인데, 사실 뭐 어떤 대단한 통찰을 보여준다기 보다는 신화라는, 대단히 매력적일 수 밖에 없는 주제의 힘에 상당히 기대고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10대 시절 이 책을 너무나 좋아해서 스무번은 읽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어딘가에서 조셉 캠벨은 독서에 대한 조언(우웩)을 하며 이렇게 얘기한 적이 있다. 한 저자의 책을 다 읽고, 그 저자가 읽은 책을 다 읽고, 그 다음에 그 책을 쓴 저자들을 다 읽고, 무한반복, 이렇게 독서의 폭을 넓혀가라고. 나는 이것을 절대 그대로 실행하지는 않았지만 언젠가 한번 이 비슷한 짓을 해보고 싶다고는 생각했다. 어쨌든 한 개인이 이 세상의 모든것을 읽을수도 없고 또 모든 주제에 통달할 수는 없기 때문에, 어떤 룰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 것 같다. 


물론 의식적으로 그러한 룰을 따르지 않아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관심사에 따라 어떤 맥락이 있는 독서를 하기 마련이다. 이 블로그를 개설할 무렵 나는 우연히 넓게 서양 중세사에 발을 걸친 주제들을 다룬 책을 연속적으로 몇 권 읽고 있었다. 미셸 파스트로의 <The Bear>, 윤선자의 <샤리바리>, Maitland의 <A Sketch of English Legal History> 등 이었는데, 단지 넓은 의미에서 서양중세사의 영역에 있을뿐 서로 상이한 주제를 다룬 이 책들이 서로간의 갭에도 불구하고 중첩되는 부분이 있고 이 시대에 관해 어떤 총체적 이해를 돕는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때 무언가 블로그의 태그 기능 같은 것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독후감을 써서 중첩되는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을 정리해서 저장한 뒤 클릭만 한번 하면 마치 마인드맵처럼 서로의 연관성을 쭉 펼쳐 볼 수 있는, 좁은 주제의 이해부터 넓은 총체의 이해를 돕는 다타베이스를 구축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이 블로그를 개설했다. 블로그엔 태그 기능이 있으므로 그것을 활용하면 내가 생각한 것과 비슷한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위에 이야기한 방법으로 블로그를 활용하면 내가 어떤 책을 읽던 태그만 정리해두면 언젠가는 각각의 책의 주제 및 성격이 어떻게 중첩되는지 언젠가는 큰 그림을 볼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말했듯이 내가 대단한 다독가도 아니고, 또 내가 읽은 모든 책에 독후감을 쓰는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함을 깨달은 지금은 실제 독서에도 어느 정도 맥락이 있는 독서를 하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는 편이다. 예를 들자면 지금은 최백순의 <조선공산당 평전>을 읽었기 때문에 정병준의 <현앨리스와 그의 시대>를 다음 책으로 골랐다. 이 독후감도 곧 올라올 것이다. 


이 글을 씀으로 인해 이 블로그의 구독자들이 '이 인간은 무슨 생각으로 이런 짓을 하고있나' 대략의 그림을 얻었길 바란다. 책 추천과 피드백, 오류 정정과 보충 지식 등은 언제나 환영! 앞으로는 많은 교류를 기대하며 (이 블로그에는 2014년 개설 이래 단 두 개의 코멘트만이 달렸다..) 이만 다소 장황한 포스트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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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디디디스이즈  (0) 2014.10.05
Posted by 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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