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고대사에 대한 나의 매혹을 설명하라고 한다면 나는 '그것이 오래됐기 때문에'라는 말 밖에 할 수 없다. 역사를 향한 나의 집착은 그것이 주는 효용과 교훈과는 무관한 일종의 기벽에 가깝다고 여러번 말해왔지만, 특히 고대사에 관해서라면 나는 내가 왜 그것을 좋아하는지 설명하기가 무척 어렵다. 기본적으로 고대의 텍스트들은 거의가 평면적이고, 그것들이 내재한 사고방식은 낯설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늘 그것들에 매혹되고 만다. 


고대인과 현대인은 인간의 인간됨이라는 동일한 조건을 가지고도 너무나 다른 방식으로 사고한다. E H 카는 과거는 외국이나 다름 없다고 말하지만, 사실 동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간의 차이는 과거와 현대의 차이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아마 고대인들의 기록과 그것을 다룬 역사가들의 글을 읽으며 지금과는 전혀 다른 삶과 세계의 가능성에 희열을 느끼는지도 모른다.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 한마디 덧붙이자면, 나는 (내용으로써의) 과거가 좋았다던지 생각하는 복고주의자는 아니다. 


내가 책을 고를때 늘 그렇듯이 <중국사유>는 별다른 사전정보 없이 책의 제목과 주제에 끌려 산 책이다. 그나마 이번에는 책을 사기전에 (다행히도) 저자와 책의 내용에 대한 기본적인 검색 자체는 마친 상태에서 구매했다. 이 책이 1934년에 출간된 고전임을 깨달았을때는 구매를 다소 고민했다. 내가 연구사를 알고싶어서 책을 읽는 것도 아닌데 거의 한 세기 이전의 연구성과가 캐주얼한 독자에게 무슨 큰 의미가 있을지 자문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34년에 나온 책을 굳이 2015년에 번역해 출간해야할 정도의 의미가 있다면 아직도 무언가 시사하는 바가 있는 것 아니겠나 생각하며 구매를 결정했다. 결과적으로는 매우 흥미로운 독서 경험이 되었다. 


현대적 연구가답게 그라네는 일단 고전적 동양철학의 형성에 대한 전승과 통설의 신뢰성을 의심하며 그것에 섣불리 기댈 수 없음을 못박고 시작한다. 그는 보존된 사료의 빈약함을 지적하며 지금까지 전해져내려오는 (지나치게 신격화된) 몇 개의 경전을 가지고 고대 중국의 사상사/학설사를 연대기적으로 복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대신 그라네는 중국적 사유의 근간을 이루는 언어관과 우주관을 설명하고, 학파와 무관하게 중국사유에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몇가지 개념들을 짚어내는데 만족한다. 나는 이것이 매우 훌륭하고 합리적인 태도라고 생각하지만, 그라네의 이런 태도는 동시에 이 책이 불가피하게 가질 수 밖에 없는 약점들을 노출시킨다. 이 책이 쓰인 시기상 20세기 초반 이후의 문헌학/고고학/언어학적 성과들을 반영할 여지가 전혀 없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성과들을 가지고도 ‘고대 중국의 사상사/학설사를 연대기적으로 복원’한다는 야심찬 목표를 섣불리 설정하긴 어렵겠지만, 조금이나마 더 구체적이고 야심찬 논의는 그라네 이후의 저자들에 기댈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동서양 지성사의 차이에 평소 지대한 관심이 있던 바, <중국사유>를 읽고 상당히 고무되어 그라네의 또 다른 대표작인 <중국의 고대 축제와 가요> 역시 구매했다. <중국사유>에 비하면 다소 실망스러웠는데, 개인적으로는 결론 자체는 납득이 가는데 (사실 근대적 심성을 가지고 <시경>을 읽는다면 당도할 수 밖에 없는 결론이긴 하다) 비해 분석 자체는 비약이 심하다고 생각할때가 있었다. 예를 하나 들자면 시경의 행로편에 대한 분석이 그러했는데, 개인적으로는 시경의 연애시가 의례적으로 축제에서 행해지던 젊은 여성과 남성의 경쟁과 성혼 맥락에서 불리웠단 추론을 지나치게 확대해서 적용하지 않았나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라네의 분석이 큰 틀에서 맞으리라고는 생각하지만, 그가 내세운 구체적인 결론들(특히 축제가 일어난 장소와 당대의 풍습에 관한 것들)에 대해서는 과연 이렇게 단언할 수 있는가 의문이 들때가 많았다. 


사실 <중국사유>도 그렇고 <중국의 고대 축제와 가요> 또한 그렇듯이 고대중국의 풍습과 정신세계에 대해 어느정도 노출이 된 적 있는 사람들에게는 엄청나게 새로운 결론들을 선사하는 책들은 아니다. 고우영의 <십팔사략>이라도 한번 뒤적거려봤거나 삼국지나 초한지 따위에 열광해본적이 있다면 물론 이렇게 깊은 논의는 낯설겠지만서도 중국인의 우주관이나 명명술, 그리고 이러한 세계관에 철저히 조응하고자 하는 생활에서의 예법들 자체는 ‘아 그게 그래서 그렇구나’ 하면서 충분히 따라갈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런 의미에서 사실 제일 궁금한 것은 그라네를 비롯한 비-동양문명 출신의 중국학자들이 이 세계관에 침투하고 이해하고 분석하기 위해 어떤 과정을 거쳤을까 하는 점이다. 자신이 접하지 않은 상이한 사유체계를 접하고 이해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을 위해 어떻게 해야할까? 나는 어떻게 다른 세계에 살 수 있을까? 이러한 의문을 지닌 채 장바구니에 서구 학자들의 중국학 책을 몇권 더 장바구니에 때려박으며 글을 마친다.

Posted by 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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