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초 잠깐 한국에 다녀올 일이 있었다. 예정에 없던 여행이라 체류기간도 짧고 정신 없었지만 어쨌든 장거리 비행을 해야했기 때문에 책을 읽을 짬은 있었다. 물론 독후감을 쓰기엔 여의치 않은 환경이어서 책로그에는 아무것도 쓰지 못했다. 책을 읽고나서 다소 시간이 지났기에 이 기간 읽은 책들을 한꺼번에 묶어 기록을 남긴다. 최근 거취에 변화가 있어서 책들이 현재 내 수중에 없으므로 자세한 리뷰는 남기지 못할 듯. 


20190227-20190316 정요근 외 <고려에서 조선으로>


여말선초 왕조 교체기에 대한 최근 연구의 동향을 주제별로 요약하는데 의의가 있는 책이다. 여말선초 시기를 '교체기' 혹은 '전환점'으로 인식하여 왕조교체기 전후에 뚜렷한 역사적 진보가 있었음을 시사하는 기존 연구와 달리, 고려말 조선초의 연속성에 집중할뿐만 아니라 두 왕조 사이에 실질적인 단절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증명하는 연구들을 포함하고 있다. 물론 여말선초에 대한 나의 인식은 일반 대중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않고 이 시기의 역사에 대한 지식도 일천하지만 어쨌든 크게 놀라운 논의는 아니었다. 역덕으로서의 경험상 아무 역사적 주제나 잡고 그 주제에 대한 연구사를 보면 대충 비슷한 그림이 나온다.. 근대초에서 20세기 초반까지를 지배하는 단선적이고 목적지향적인 전통사관이 있고 (물론 한국의 경우 근대의 이식이 늦었으므로 이러한 역사적 서술이 훨씬 더 나중까지 보편적이다) 그 뒤로는 실증과 객관성에 집중하는 수정주의적 사관이 대두하고.. 연구가 많이 된 주제면 여기서 후기수정주의, 생활사, 미시사, 심성사, 개념사 기타등등 기타등등이 등장하고... 뭐 그렇다. 


이러한 흐름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게, 역사적 주제를 디립다 파게 되면 기존에는 엄청난 단절 혹은 발전이라고 생각했던 사회적 변화가 가능했던 조건에 대해 더욱더 풍부하게 알게 되고 그렇게 지식이 축적될수록 전후의 연속성이 도드라져 보이는 건 필연인듯 해서다. 물론 프랑스 혁명처럼 그것을 기점으로 전과 후가 완전히 뒤바뀌는 사건들이 있긴 한데, 그정도 씩이나 되니까 혁명이라고 불러주는 것이겠지.... 물론 이런 기념비적 사건들에 대한 해석마저도 요즘 트렌드는 장기적 변화에 집중하는 쪽으로 변하고 있긴 하다.


여튼 한국사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누구나 한번쯤은 여말선초로 눈을 돌리기 마련이다. 다양한 연구자들이 이 시기의 정치사/제도사/외교사 따위의 무거운 주제부터 복식사처럼 생활과 밀접한 주제까지 정리한 내용들이 컴팩트하게 담겨있으므로 이 주제에 관심이 있다면 읽어서 나쁠 것 없다. 다만 열 명이 넘는 연구자들이 공저한 책이므로 이 시기에 대해 깊고 총체적이고 일관성 있는 그런 분석을 기대할 수는 없으므로 그런 쪽 책을 읽고 싶은 분은 다른 책을 읽으세용~


20190301-20190316 김은성 <내 어머니 이야기> 1-4권


이 책을 읽게 된 배경은 좀 특이하다. 일단 처음 이 책에 대해 인지하게 된 정황은 서점의 마케팅을 통해서였다. 하도 프로모션을 많이 해대길래 보니까 TV에서 김영하가 언급을 해서 이렇게 됐다고 한다. 여튼 크게 관심은 없었는데, 동생 생일이 3월에 있어 선물로 뭘 줄까 생각하다가 만화책이나 사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적절한 작품을 알아보던 중 그냥 가격대도 적절한 거 같아서 이 책을 골랐다. 그외에 고려했던 것은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비쌈), <35년> (내용이 너무 무거움), 이향원의 <떠돌이 검둥이> (하필 2권이 절판) 등이 있었으나 괄호 안에 서술한 이유들 때문에 기각. 주문해놓고 그래도 선물하는 사람이 무슨 내용인지는 알아야 되겠다 싶어서 인터넷에서 체험판을 구해서 읽었다. 


근데 그 체험판이 너무 재밌었다!


그래서 서울집에 도착하자마자 동생이 아직 뜯지도 않은 자기 생일선물을 내가 먼저 뜯어보는 사태가 발생했다. 1권의 반 정도 분량은 체험판과 겹쳐서 앉은 자리에서 바로 읽고 2, 3권은 숙소로 들고가 읽었다. 노인들이 해방/한국전쟁 이전의 삶을 회고하는 이야기를 보고있자면 속수무책으로 빠져들게 된다. 위에서 어떤 사건을 기준으로 시대간의 단절을 이야기하는 건 유행이 지났다는 얘기를 해놓고 이렇게 말하자니 민망하긴 한데, 확실히 해방/한국전쟁 이전의 한반도는 그 이후의 한반도와는 너무 다른 세계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류의 이야기를 볼때마다 어쩜 동네마다 풍속도 이렇게 다른지 모르겠고, 우리가 상상하던 과거와 그들이 회고하는 과거의 괴리에 놀라게 된다. 특히 유교적 윤리규범의 보편성이라는 측면에서 그러한데, 전근대 한반도 역사에서 유교가 주된 통치이념으로 쓰인 역사가 긴 건 사실이지만 실제 농촌사회에서의 적용은 우리가 상상하는만큼 철저하진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면 우리가 생각하는 유교가 근대화라는 목적에 복무하기 위해 취사적으로 유교적 요소들을 선택해 만들어진 '근대화된 유교'가 아닌가 뭐 이런 생각도 들고... 어쨌든 이 분야에 전문가도 아니므로 유교에 대한 잡설은 여기서 마치겠다.


해방이전 - 이북 - 여성서사라는 키워드를 공유한다는 점에서 박완서를 즐겨 읽었던 사람들이라면 좋아할만한 만화다. 풍속사/미시사 따위에 관심이 있어도 매우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듯. 



최혜영 20190312-20190321<그리스 비극 깊이 읽기>


이 책 또한 매우 재미있게 읽었는데 고대그리스사에 대한 나의 지식이 일천해서 면밀한 논할 수 없는 게 안타깝다.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고대 그리스 비극을 문학적, 내부적 시선이 아닌 국제관계사적 맥락 혹은 의례적/종교적 맥락에서 분석을 시도하는 책이다. 서문을 읽으면서 그러고보니 이건 어떻게 보면 지극히 당연하고 합리적인 발상인데 지금까지 왜 이러 논의를 못봤을까, 뒤통수를 맞은 거 같았다. 고대의 '그리스'가 여러 도시국가의 연맹체라는 사실을 아는 시점에서도 꽤 놀라운 점이 많았다. 그렇다, 왜 아테네인들은 비극을 쓰면서 자기네 도시가 아닌 남의 나라 얘기를 그렇게 써제꼈는가...!! 당연히 한번쯤은 가져볼 의문인데 그리스 비극이 문학작품으로서 갖고 있는 고전의 이미지가 너무 커서 그 점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을 안해봤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국제관계사/정치적 맥락에 대한 분량과 의례적/종교적 맥락에 대한 분석에 대한 분량의 차이가 너무 컸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후자에 더 많은 분량이 할애되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저자가 이 부분은 과거의 논의가 풍부하다고 생각해 책에 안썼다면 할말은 없지만...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이 두 부분의 순서가 뒤바뀌었단 생각이 들었다. 의례적/종교적 맥락에 대한 논의가 선행하고 역사적, 정치적 맥락에 대한 논의가 뒤에 나와야 이것들이 의례의 일환으로 사람들을 어떻게 동원했고, 그를 통해 필연적으로 정치적 선전도구로 기능했는지 순차적으로 이해가 될듯.


~~~~~~~~~~~이것으로 한국 여행 기간 동안 읽은 책들에 대한 날림 리뷰를 마침~~~~~~~~~~~~


Posted by 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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