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의 독서 앱을 체크해보니 이 책을 완독한게 무려 3월 31일이란다. 이쯤되면 기록의 의미가 있나 싶지만서도, 그저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는데 의의를 두며 이 글을 쓴다. 이 블로그를 방치한 두 달 사이 티스토리는 글쓰기 에디터의 디자인을 상당히 바꿔놓았고, 나는 일을 시작하고, 엄마의 집에서 나와 이사를 하고, 가구와 가전제품을 셋집에 채워가며 시간을 보냈다. 집은 대강의 꼴을 갖춰나가고 있다. 아직도 식사용 테이블과 의자, 전자렌지, 신발장 등의 살림살이를 채워넣어야 하지만, 그래도 조금 마음의 여유가 생겨서 지난주 즈음 부터는 책도 조금씩 다시 읽기 시작했다. 그렇게 독후감을 쓰지 않고 찔끔찔끔 완독한 책이 쌓일까봐 두려워 어서 이 글을 해치우고 싶은 마음 뿐이다... 

 

사실 <조선의 퀴어>라는 제목만 보면 이씨조선을 생각하기 쉬운데 전근대 조선의 퀴어를 다룬 책은 아니다. 그나마 서양사를 다룬다면 얼리모던이라는 범주도 있고 하니 해볼수는 있을 거 같은데 여튼 조선은 아니지... 그래서 이런 제목은 사실 낚시 같아서 책을 사면서 좀 찝찝했는데 그래도 뭐 홍보를 그런쪽으로 하는 것도 아니니깐 OK입니다... 여튼 이 책이 다루는 주제는 식민지 조선에서 근대적 섹슈얼리티가 형성되고 이식되는 과정이므로 혹시 정말로 전근대 조선의 퀴어가 궁금한 분들은 이 글을 보고 유념하시길 바랍니다. 아니 사실, 무엇보다, 그냥, 그런 건 없습니다... 

 

읽은지 시간이 좀 지났기 때문에 책에 등장하는 '식민지' 조선에서의 근대적 섹슈얼리티에 대한 구체적 논의나 그것에 관련된 다소 우스꽝스러운 예화들에 대한 기억은 많이 바랬다. 다만 내가 이 책을 읽으며 개인적으로 상념에 잠겼던 부분은, 근대인을 배양하는 데 필요한 지식과 정보, 혹은 그것을 획득하는 과정 자체가 어떤 저속하고 상스러운 결이 있지 않냐는 것이다. 이 책이 1장부터 지적하듯이, 식민지 조선의 식자들은 다른 책도 아닌 성과학자 해블록 엘리스의 전집을 굳이 큰 돈을 줘가며 소장하고 소위 말하는 '변태성욕'을 다룬 잡지를 구독하며 근대적 지식체계(의 일부)를 형성해갔다. 20세기 초의 일본에서는 이러한 지식에 대한 열광이 너무 큰 나머지 '변태붐'이 분 정도고, 식민지 조선의 호들갑과 열광 또한 그에 못지 않다. 이 책에는 아주 많은 사진자료와 문자자료가 등장하기 때문에, 그들이 얼마나 정열적으로 이런 류의 지식을 추구해왔는지 가늠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고루한 미감과 과장된 어구들에서 나타나는 우스꽝스러움을 걷어내고나면, 과연 근대적 개인은 여기서 멀리 지나왔다고 할 수 있는것일까? 나로서는 이것을 어떤 역사적 분석으로 한정해서 생각하기가 매우 어려웠는데, 나의 개인적 성장과정에서도 이런 류의 불온한 호기심과 지식추구가 매우 큰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그것을 다소 너무 지나치게 추구한 편이기는 한 것 같은데, 하여튼 나만 쓰레기가 아니라면, 도대체 근대적 지식체계에서 섹슈얼리티가 차지하고 있는 부피와 비중은 왜 이리도 크단 말인가? 그리고 또 왜 근대인은 섹슈얼리티에서의 정상성과 비정상성을 그렇게도 열심히 학습해놓고 다시 또 후자에 대한 무한한 동경과 호기심과 탐구욕을 지닌 채 살아가게 되는가? 이게 도대체 무슨 개지랄이란 말인가? 

 

여기까지가 이 책을 읽으며 내 머릿속을 떠돌던 화두들에 대한 서술이었고, 어쨌든 이 책은 전공자가 아닌 사람들도 읽기에 무리가 없지만 가볍게 쓰인 책은 아니며... 마치는 말이 매우 인상적이고 좋다. 다만 각주가 아니라 미주인 점은 다소 빡침. 

Posted by 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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