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2020년의 첫 주도 끝을 향해 달려가는데 나는 아직도 작년 중순에 읽은 책들에 대한 독후감도 다 쓰지 못했다. 덕분에 묘한 죄책감에 휩싸여 이 포스트를 쓴다. 직장을 안다니면 독후감을 꾸준히 쓰겠지 싶어 그간 읽은 책들을 바리바리 싸서 고향집에 내려왔는데, 이래서는 괜히 힘만 쓴 꼴이다. 오해 마시라, 직장을 때려친 게 아니라 연말연초를 맞아 휴가 쓴 것에 불과하니...

 

우선 이 책이 청사에 대해 지식과 이해가 일천한 독자를 대상으로 쓰여졌다는 점을 짚고 넘어가고 싶다. 나는 제목만 보고 얼핏 문화사에 대한 내용이나 인류학적인 서술이 들어있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그렇다기보다는 한국인 독자에게 직접적으로 청나라가 어떤 국가였고 어떤 점에서 다른 전근대 중국 왕조와 구별되는지에 대한 기본적 지식을 제공하는 입문서에 가까웠다. '키메라'라는 희랍어 어원의 단어에는 어떤 괴이쩍고 심원한 어감이 있지만, 이 책의 경우 이 단어는 정말 청나라라는 국가가 구성된 다민족적이고 다원적인 방식을 묘사하는 직설적인 비유로 사용되고 있다. 비유가 직설적이고 단순한 게 나쁘다는 것은 아니고, 혹시 나처럼 이상한 기대를 품을 사람이 생길까봐 여기 적어둔다.  

 

책을 완독하고 꽤 시간이 지났지만 그래도 확실하게 배웠다고 생각하는 점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청나라 사회가 팔기라는 제도를 중심으로 조직되었다는 것과 청이라는 국가의 성격이 우리가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중화의 범주를 벗어나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자면 청나라 황실은 청말까지 몽골의 칭기스칸 일족과 지속적인 혼인관계를 맺었고 몽골-티베트 세계의 지배적 종교였던 티베트 불교의 수장인 달라이 라마의 보호자를 자처하였다. 저자는 청 왕조가 평균적인 한국 독자가 생각하는 것만큼 한화漢化하지 않았으며 중화와 초원 세계 양쪽 모두를 경영하기 위해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다원적 체제를 지니고 있었음을 강조한다. 이는 저자가 말하듯 17세기부터 19세기까지의 청의 대러시아 외교에서 뚜렷하게 나타나는데, 청 황실이 러시아와의 외교를 광의의 '몽골 문제'로 인지하였기 때문에 러시아와의 접촉에 있어서 한인 관료는 철저하게 배제되며 그들 사이의 조약 역시 만주어와 러시아어 텍스트가 존재할 뿐 굳이 한문으로 작성되지 않는다. 청 황실의 공식 외교문서가 한문으로 작성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중화 왕조로써의 청에 더 익숙했던 독자라면 상당히 충격적일 수 있는 사실이지만, 저자에 따르면 몽골-티벳 세계에 속하는 일들에 대해서는 한인 관료가 '순례권'을 가지지 못했으므로 사실 공문서가 한문으로 작성되어야 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나로서는 말을 얹기가 어려운 주제이지만 저자는 청나라의 대조선 외교 역시 한인 관료의 순례권에서 벗어난 지역으로 분류하고 있다.

 

그 외에 청과 현대 중국 사이의 연속성에 대해 서술한 부분에서도 인상적인 통찰이 있었다. 중국의 근대화 과정에서 청 황실이 타파해야할 전근대적/봉건적 존재로 인식됨과 동시에 근대화에 대한 열망은 한족을 중심으로한 내셔널리즘과 강력히 결부되어 나타나곤 했다. 그렇다면 한족 내셔널리즘에 기반해 건국된 현대 중국이 과연 애초에 다민족적/다원적 정체성을 전제로 조직된 제국이었던 청의 유산을 온전히 물려받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과거 청 제국의 일부였던 티벳과 위구르의 현재에서 보듯이 이는 불가능에 가까운 과제로 보인다. 

 

아쉬운 점 하나를 적자면 이 책을 통해서는 청이라는 국가가 팔기라는 제도를 통해 사회를 조직하는 방식에 대해서 추상적이고 개략적인 정보 이상의 것을 알아낼 수 없다는 것이다. 팔기라는 집단들이 어떤 방식으로 기능했으며 각 집단간에 어떤 실질적인 차이가 있었고 어떤 기에 속해있다는 것이 개인들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었는가에 대한 서술이 있었으면 아마 청이라는 사회가 어떤 곳이었는지 독자에게 더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어쨌든 조선과 조선인이 자주 등장할 뿐 아니라 책의 도입부부터가 병자호란으로 시작하는만큼, 이 주제에 대해 깊은 이해가 없는 나같은 한국인 독자에게는 청사에 대한 괜찮은 입문서가 될 수 있을 듯 하다.

 

Posted by 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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