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매우 화가 나있다. 거의 다 쓴 포스팅을 한번 다 날려먹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존나 빨리 대충 쓸거다... 그리고 순서대로라면 로버트 단턴의 <혁명 전야의 최면술사>에 대해 먼저 써야되지만 그건 꽤 오래 걸릴거고 지금은 시간이 늦었기 때문에 일단 이것부터 빨리 쓰도록 한다...

1. 진 리스가 1890년생인걸 알고 매우 깜짝 놀람. 왜냐면 문체가 굉장히 속도감있고 구어체에 가까움. 주제도 대체로 주변부나 여성의 경험에 관한 것이라 더욱 현대적으로 느껴짐.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 쓰고나서 얼마 안가서 죽었음.

2. 카슨 매컬러스 단편집보다 이게 훨씬 재밌었음. 나는 역시 1세계인의 심상에 별로 관심이 없는듯... 오랜만에 책장이 절로 넘어가는 독서를 함.

3. 리서치를 해보니까 표제작인 Till September Petronella는 아마 자전적인 이야기임. 작가가 코러스걸 생활을 꽤 오래 했다함. 책을 다 읽고 거기서 그냥 끝내버리면 모르게 되는 게 너무 많다는 것을 실감함 .

3. 가장 좋았던 단편은 표제작이 아니라 The Day They Burned the Books인데 이 부분에 대해 또 쓰려고 하니 화가 난다. 비서구인이 서구에 대해 가지고 있는 억압적이면서 동시에 해방적인 미묘한 관계를 짧은 단편으로 명료하게 나타냄. 내가 좋아하는 소품이나 캐릭터(인물로서가 아닌 장치로써) 많이 나옴.

주인공들은 이주민의 자손이거나 혼혈이라서 본토에서 태어나 이주한 '진짜 영국인'들에 비해서 차별 받고 실질적 억압을 경험함. 백인 아버지가 흑인 어머니를 일상적으로 모욕하고 구타하는 환경은 이러한 억압의 한 예이고 또 동시에 이 모든 불합리적 상황에 대한 비유임. 그리고 백인 아버지는 본토에서 값비싼 책들을 자꾸 주문하는데, 여기엔 향수병과 속물교양에 대한 추구가 둘 다 동기로 작용함. 흑인 어머니는 이 책들을 증오할 수 밖에 없음. 이런 상황에서 그들의 아이는 독서 통해 위안과 도피처를 얻음. 그러나 그의 백인 아버지가 이 책들을 향수병을 달래는 용도로 사모았단 사실에서 드러나듯 사실 이 책들의 물리적 출처뿐만 아니라 이들이 제공하는 세계 또한 결국 유럽, 좁게는 영국의 그것에 기반해 있음. 이 책들은 그러므로 양가적 존재임. 백인 아버지가 죽었을 때 어머니는 아버지의 책들을 불태우는 것을 복수이자 탈출구로 선택할 수 있지만 아이는 그럴 수 없음. 그럴 수 없는 정도가 아니라 그 선택으로 인해 고통 받음. 주인공들은 결국 어머니의 손에서 무작위로 두 권의 책을 구해내는데 성공함. 이 책들이 무엇이었는지 여기 적으면 너무나 뻔한 아이러니처럼 들리기 때문에 적지 않겠음. 이 결말을 이야기를 읽을땐 굉장하다고 느꼈는데, 내 손으로 적으니 너무 평범해보인다. 그만큼 이야기가 몰입감이 있음. 

4. 나머지 단편들도 평이하게 재밌었다. 그래서 다음에는 Jean Rhys의 또 다른 단편집을 읽기로 했다... 그렇다.. 나는 이 작가의 책을 하나도 읽지 않은 주제에 책을 두 권이나 이미 샀던 것이다... 펭귄의 상술 때문에 이렇게 사놓고 몇년째 안읽은 단편집들이 집에 30권은 있는 것 같다... 살다보면 그럴 수도 있지...

Posted by 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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