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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07.13 20180713 정혜주 <신들의 시간>
생소한 분야를 접할 때 가장 큰 난관 중 하나가 바로 입문서를 고르는 일이다. 특히 그 분야의 전문가가 국내에 희소할 경우, 몇 안되는 번역서 중에 기중 나은 것을 골라야할때의 곤혹스러움은 나만이 느끼는 감정은 아닐 것이다. 메소아메리카의 문명과 고고학이라는 생소한 주제를 다루는 책을 읽어보기로 한데는 저자가 한국어를 모어로 하는 이 분야의 전공자라는 것이 한 몫 했다. 안그래도 낯선 분야에 대해 읽느라 고생하는데, 어색한 번역투 때문에 추가로 골머리를 썩힐 일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연 이 책이 적절한 입문서였느냐? 절반의 성공이라고 하고 싶다. 최소한 저자의 문체는 제법 자연스러운 편이다. 사진자료가 풍부하게 쓰인 점도 주제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다만 내용의 배치와 책의 구조가 지금 형태가 최선은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일단 각 문명을 구성하는 장의 도입부에 그 문명의 창조신화를 삽입한 것은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내용이 독파하기 어렵더라도 일단 그 문명의 핵심적인 세계관에 대한 이해를 선취한 다음 다른 주제로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뒤에 바로 왕사(혹은 지배자의 계보)를 다루는 것은 적절하지 못했다. 특히 첫 장인 마야문명의 경우가 그러했는데, 해당 문명의 사회상에 대한 설명 없이 기계적으로 누가 왕이 되고 다음 왕은 누구고 하는 반복적인 서술을 보고 있자니 진이 빠졌다. 이렇게 계보를 읊는데 덜 치중하고 저자의 전공분야인 고고학에 바탕을 두고 메소아메리카 문명의 생활상과 세계관을 설명했으면 독자의 흥미를 잡아두는데 더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편집에 대해서도 아쉬움이 남는다. 예를 들자면 53페이지의 '14년의 재위 후에 그가 죽자 6세의 어린 동생인 아흐깔-모-납 1세가 왕위에 올랐다. 그는 형의 재위 시절에 후계자를 의미하는 '어린 왕자', 즉 촉이라고 불렸다. 아흐깔은 형을 이어 35세에 왕위에 올라 23년을 다스렸다' 같은 문장은 도저히 논리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바로 전 문장에서 6세에 왕위에 오른 이가 다음 문장에서는 35세에 왕위에 올랐다니? 안그래도 낯선 고유명사들로 가득 찬 문장을 신경이 곤두서 읽고있을 독자에게 이러한 오류는 더욱더 큰 혼란을 준다. 이밖에도 몇몇 모호하거나 오자임이 의심되는 부분들이 있으나 일일이 이곳에 적지는 않겠다.

결론적으로, <신들의 시간>은 메소아메리카 문명을 전공한 한국어 모어 화자라는 저자의 장점을 이해하기 힘든 난삽한 구성과 포커스, 아쉬운 편집 등으로 최대한 살리지 못했다. 특히 위에 이 책의 풍부한 사진자료에 대해 칭찬했는데, 문제는 이런 이미지들이 페이지에 비해 너무 작게 배치되거나 하여 디테일을 알아보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았단 것이다. 안그래도 생소한 문명의 낯선 도상을 다루는데 이미지를 잘 알아볼 수가 없다면 독자로서는 흥미가 다소 꺾일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에 설명했듯 이 책에는 나름의 장점들이 뚜렷하다. 메소아메리카의 문명사와 고고학이라는 생소한 주제를 한국인 독자들에게 전하는데 애쓴 정혜주 선생님의 건승을 빌고, 또 다른 책으로 만날 일을 고대한다.


Posted by 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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