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야망

Buying 2016. 9. 2. 23:40





이씨조선의 엘리트들을 경멸하면서도 동질감을 느낄 수 밖에 없는 부분들이 있다. 그들의 책이나 문방구, 서재에 대한 집착을 볼때 특히 그러하다. 이상적인 책장 그림을 그려놓고 감상하면서 하악하악하다니 대단하지 않은가. 그리고 후세인인 나는 그 이미지들을 모으면서 하악하악하고 있고...


지금 나의 가장 시급한 목표는 '졸업 후 괜찮은 직장에 취직'이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혹은 비현실적인..) 소망이다. 그러나 가장 하고 싶은게 뭐냐고 묻는다면 답은 약간 달라진다. 그것들은 기이하게도 책에 관련된 것들이 많다.



1. 서재들을 합친다.


사주를 믿지는 않지만 어쨌든 나의 사주에는 역마살이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 우스운 것은, 내가 지독히도 여행과 객지를 싫어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인생에는 지금까지 제대로 된 정착이 없었다. 어릴때 유학을 가고, 유학을 간 다음에는 셋집을 전전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어린 객기에 대학을 타지로 진학했다. 나는 1년만에 그 결정을 후회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는데, 처음 유학길에 올라 멜번에 갈 때 나는 엄청난 양의 책을 등짐으로 지고 비행기에 탔다. 내 백팩에는 시공사판 바람의나라가 1권부터 21권까지 빽빽히 들어차있었다. 가방이 꽤 넉넉한 등산가방이었어서, 꽤 많은 양의 만화책을 더 집어넣을 수 있었다. 부치는 짐은 무거울수록 돈이 나갔기 때문에 엄마의 꾸지람을 피하기 위해서 나는 가능한 한 책들을 내가 직접 들고가려고 애썼다. 그때 내가 갖고간 만화책들의 양이 굉장했다. 킹오브밴디트징, 선녀강림, 파라다이스키스... 뭐 이런 중학교 1학년생이 좋아할만한 만화들이었다. 


가져간 책의 권수로는 만화책의 비중이 압도적이었지만 그것들만 갖고 비행기에 탄 것은 아니었다. '칼의 노래'나 '신화의 힘'도 그때의 리스트에 들어있었다. 김두식의 '헌법의 풍경'도 있었다. 웃긴 것은 다 이미 한번은 완독했던 책들만을 골라 가져갔다는 점이다. 그리고 호주에서 나는 그 책들을 정말 지겹도록 재독하고 재독했다. '칼의노래'는 이제 책 표지가 너덜너덜하니 알만하다.


거기서 끝나지 않고 나는 한국에 있는 친지들에게 계속 내가 읽고싶은 책들의 리스트를 작성하여 이 책들을 사서 보내달라고 요구했다. 대표적으로 진중권의 책들을 그런식으로 접했다. 그외에도 언니가 자신이 재밌게 읽은 책들을 종종 끼워서 보내주었다. 그런식으로 언니가 골라서 보내준 책들은 <김약국의 딸들>, <삶의 한가운데> 등이 있다. 몇 권 더 있지만 저렇게 두 권이 내게 각별했다.


영어로 독서하는 습관을 들인 것은 우습게도 10학년이나 되어서였다. 나는 그 전에는 호주에 적응할 생각 자체가 별로 없었다. 그림 많이 그리고 인터넷만 디립다 했다. 9학년때 에세이라이팅 과외를 하던 선생님이 나를 좀 예뻐했다. 그때 첫 숙제로 무슨 대체역사물 소설에 네 해석으로 주석을 달아오라고 시켰는데, 엄청난 지적 허세로 가득찬 결과물을 내놓았다. 의외로 과외선생님은 그 과제를 굉장히 맘에 들어했다. 영어가 어눌한 중3짜리 꼬마가 '수태고지'니 뭐니 하는 고급어휘들을 사전에서 열심히 찾아서 뭔가를 써온게 기특했던 모양이었다. 그때부터 영어와 공부에 흥미를 붙였다. 내가 칭찬에 좀 약하다... 그때부터는 영어로 쓰인 책들도 모으기 시작했다. 헌책방에 드나드는 취미도 생겼다. 그렇게 멜번에 점점 '내 책장'이라고 부를만한 게 생겨났다. 


대입시험이 끝나고 나는 캔버라에 있는 대학으로 진학했다. 혼자 살아보고 싶은 게 가장 큰 동기였다. 그때까지만해도 나는 내가 공부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중대한 착각을 하고 있었다. 캔버라는 공부하기에 이상적인 환경처럼 보였다. 그래서 시드니, 브리즈번 등을 제치고 부러 캔버라에 있는 대학을 골랐다. 몇 년의 대학생활 후 나는 깨달았다. '아, 나는 공부를 싫어하는 사람이구나!' 어쨌든 캔버라에도 내 책장이라고 부를만한 게 생겼다. 법서들의 부피가 너무 커서 조그만 2단 책장에는 언제나 책들이 겹겹이, 가로세로 수납되어있다. 그래도 공간이 모자라서 얼마전에는 지난 교과서들을 조금 팔았다. 그래서 캔버라에서는 어지간하면 얇은 페이퍼백만을 구입하는데도 늘 공간이 모자라 책상이나 소파 같은 곳에 책을 쌓아두기 일쑤다. 


2012년에 휴학하고 서울에 갔다. 그때 내가 뭔가 했다고 할만한 일은 딱 하나다. 책장정리. 옛날부터 한번 뒤엎어야지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시작 자체는 꽤 발작적으로 했다. 어느날 밤에 펜으로 종이에 칸을 슥슥 그리고 분야별로 책을 나눌 생각을 했다. 바로 실행에 옮겼다. 밤에 책을 다 뽑아내고 다음날 아침 날이 밝았을 때 몽땅 버렸다. 약간의 배경설명을 하자면, 나의 서울집은 방이 네 칸인데 언니가 시집간 이후로는 아버지 혼자서 그곳에 기거한다. 비효율적일 수 있지만 나나 동생이 몇달씩 한국에 와있을 때도 있기 때문에 집을 줄여 이사 가기도 여의치 않다. 유학 가기 전 어머니가 쓰던 방을 '서재'로 부르는데 이 방에는 주로 엄마의 책들과 언니의 책들이 수납되어있다. 그래서 벽면 전체를 거의 차지하는 큰 책장이 두 개가 있다. 한 책장에는 젠더스터디를 공부한 엄마의 책들이, 한 책장에는 정외과를 나온 언니의 책들이 있다. 내가 굳이 정리하지 않아도 이미 분야별로 분류가 대충 되어있는 상태였다. 그래서 그쪽 서재는 대충 놔뒀다. 그리고 '작은 서재'가 있다. 이곳은 내가 유학 가기 전 쓰던 방인데 너무 작아서 방으로써의 기능은 정말 최소한만이 가능했다. 2010년 말 언니가 시집간 후 나는 언니 방을 침실로 쓰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기존의 방을 정말 개인서재처럼 쓸 수 있게 되었다. 2012년의 여름에 나는 이 방의 책장을 말그대로 갈아엎었다. 여기저기서 물려받은 아동문고나 괴서들, 어릴때 철모르고 산 잡서들을 죄다 갖다버렸다. 버릴 게 너무 많아서 몇 번을 왔다갔다 했다. 경비아저씨가 이 꼴을 보고 어떻게 책을 그렇게 버리냐며 말렸다. 신기하게도 책들을 재활용쓰레기장에 버리는 족족 누가 가져갔다. 경비아저씨는 결국 나의 소행을 막 퇴근한 아버지에게 일러바쳤다. 대체 왜? 아버지는 책을 왜 버리냐며 조카에게라도 갖다줘야한다고 내가 마지막으로 갖다버린 책더미를 또 한 수레 싣고왔다. 아버지는 그 책들을 언니 집에 갖다 줬지만 먼지투성이인 그 잡서들의 운명은 변하지 않았다. 이때 (나를 포함한) 한국인들의 책을 향한 물신적 집착을 강하게 느낄 수 있었다. 책은 책이라는 이유로 버릴 수 없다는 뭐 그런 의식. 


필요 없는 책들을 버리고 나니 마음이 전에 없이 가벼워졌다. 책장들을 닦고 내가 계획한대로 분류해서 다시 꽂았다. 막상 책들을 꽂기 시작하니 책들의 크기라던가 키라던가 이런것들을 맞추는데 꽤 신경을 쓰게 됐다. 이 과정이 며칠 걸렸다. 정리를 끝내고 나니 책의 수가 많지 않았다. 워낙 많이 갖다버리기도 했고, 온전히 '내 책'이라고 부를 수 있을만한 게 서울에는 몇 권 없었다. 그야 서울에 살던 시절 줏어 읽던 책들은 주로 언니나 엄마의 책들이었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나마 틈틈이 서울에 올때마다 내 돈으로 사본 게 몇 권 있긴 해서 대충 분야별로 칸을 나누니 아예 텅 빈 칸은 없었다. 2016년 1월 마지막으로 서재를 봤을 땐 만화책이 너무 많은 칸을 차지하고 있어서 또 이게 약간 처치 곤란이다. 이 작은 서재에서 밤에 우드위크 초를 켜놓고 책을 보고 있으면 아주 운치가 있었다. 조금 추운 방이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지금 내가 가장 강렬히 소망하는 일은 나의 이 세 방에 있는 책들을 하나의 공간에 합칠 순간이 찾아오는 것이다. 서울에서 어떤 책에 대해 얘기하고 싶은데 그 책은 멜번에 있고, 캔버라에서 예전에 읽은 책을 과제할때 인용하고 싶은데 그 책이 서울에 있고, 만화책의 어떤 권은 멜번에 있고 어떤 권은 서울에 있고, 정말 미칠 노릇이다. 이 소망은 내가 삶의 터전이라고 부를만한 하나의 장소가 생길때에야 이루어질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로또가 터지거나... 취직을 해야... 가능하다...

 


  

2. 조카에게 책을 사줘요 


내 조카는 여섯살이다. 나는 이녀석을 깨나 좋아하고 이녀석도 나를 깨나 좋아한다. 요즘 애들은 한글 깨치는 게 빨라서 이 나이때 벌써 글을 읽고 쓰는 애들도 있지만 이 녀석은 아직 자기 이름 석자를 겨우 쓰는 수준이다. 나는 조카에겐 암말 안하지만, 어쨌든 그가 글을 꽤 유창한 수준으로 읽게 되기를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다. 조카에게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전질을 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 사다 바치고 싶기 때문이다. 가능하다면 채지충의 중국고전 전집도. 근데 이건 요즘 파는지 모르겠다. 어린 시절 읽은 학습만화 전집들의 기억이 너무나도 강렬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조카녀석을 역덕후로 만들고 싶은 것일까. 어쨌든 나도 빨리 십만원 이십만원 하는 전질들을 턱턱 사줄 수 있게 취직을 해야되고, 조카녀석도 그것들을 읽어야하니 어서 한글을 깨쳐야한다. 



Posted by 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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